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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진실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것은 거짓된 진실 아래에 남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갔군요.”

    “그래.”

 

    담백한 감상이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알게 된 사람들은 다음을 바랬지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지금을 바랬기에 현재가 무너진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폴라리스는 침대에 앉아 닫힌 엘리베이터를 한참 바라보았다. 페르카드는 가만히 서서 그런 폴라리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침대보가 폴라리스에 의해 꽉 쥐어져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다음 말을 뱉는 그의 목소리 역시 플라네타리움의 지진을 담고 있었다.

 

    “난 모든 걸 다했어.”

    “네. 그랬죠. 압니다. 그런 자리니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런 자리였던 거겠죠.”

 

    폴라리스는 그제야 엘리베이터에서 시선을 뗀다. 그리고 한때 폴라리스였던 자를 바라봤다. 평생에 걸쳐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던 자를 말이다.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각종 재앙이 뿜어져 나올 상자를 알고도 여는 바보는 없으리라. 하지만 위로 올라간 이는 그 상자의 가장 마지막에 희망이 나올 것이라는 걸 확신이라도 하듯 감히 상자를 열러 갔다. 그리하여 폴라리스에게도 균열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발레오 에이프릴이라는 존재의 본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페르카드는 폴라리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기에 본인 역시 지금의 폴라리스와 친밀한 사이가 되거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간 이 역시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본인 자체는 자신에 찬 모습은 아니었지만 곁에 있는 이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그것을 보다 보면 어쩐지 그를 따르게 되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것이 딜라인 어거스트라는 존재의 본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면의 문양이 심장에 새겨진 폴라리스는 문양의 모양대로 쥐여오는 듯한 압박감에 손을 올려 자신의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올린 손 위의 팔찌에는 흰색 문양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페르카드가 그를 부축해 주려 다가가자 폴라리스는 됐다는 듯 손짓하고 크게 숨을 쉬었다.

 

    “그 녀석이 이곳까지 와서 말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누구보다 잘 알겠더라.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올라가고자 했겠지.”

    “당신이 목숨을 버리는 번거로운 일까지 해서 사람 하나를 막을 분은 아니죠. 아니면, 약해지신 겁니까?”

    “장난하니? 같은 식별 코드로 시작한다고 해서 걔가 나인 건 아니야. 나와 같은 얼굴을 한 반란분자가 얼마나 많았겠어?”

    “…그럼 왜 그러셨습니까?”

    “….”

    “마가리타와 파라다이스가 필요한 시점 같군요.”

    “…얘!”

    “죄송합니다. 농담에는 역시 소질이 없어서….”

    “됐어. 그런 소리나 계속할 거면 그냥 가버려.”

 

    머지않아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쿵! 가뜩이나 어둡고 먼지가 날리는 곳이 어지럽게 흔들려 각종 잡동사니가 붉은 물에 쓰러졌다. 신이 노한 발걸음이 플라네타리움을 어둠에 물들인 것이다. 폴라리스는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끌어모았고 페르카드는 망설임 없이 그를 감싸러 달려갔다. 두 사람의 검은 옷 끝자락이 붉게 물든다. 산제물을 놓친 신이 입맛을 다시며 걸음을 돌리는 여진이 멎을 때까지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표정을 살필 수 없기에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 답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나는… 나에겐 플라네타리움이 전부였고 이곳이 곧 나였어. 그래서 지킨 거야. 모든 일에 주저 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고.”

    “폴라리스….”

    “이제 와선 그게 날 부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폴라리스인가? 사달멜리크? 시그마? 플라네타리움? 그것도 아니면 발레오 에이프릴? 마지막 이름이 가장 이상하지. 모든 발레오는 자기가 발레오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

 

    페르카드에게 소질이 없는 것은 농담뿐만이 아니었기에 이런 때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말을 고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폴라리스라는 이름을 걸고 있었을 적부터 떠올린다. 예배를 올리고 제물을 바치는 일이 응당 해야 하는 일로 느꼈던 것과는 별개로 부담감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북극성은 밤하늘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견뎠다. 아마도 눈앞의 사람은 너무나도 빛났기에 이 어둠이 더 짙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 생각하고 나면 꺼낼 말은 명확해졌다.

 

    “아직도 제가 그냥 가는 게 나을까요.”

    “….”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발레오는 침묵한다.

    “답답해. 너랑 있으면 그래. 쥐고 버리지 못하는 기억들이 너 때문에 짙어져. 그래서 네가 없으면 좋겠어.” 그리고 지상의 어떤 발레오와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요?”

    “그리고…. 네게 플라네타리움은 뭐였어? 그리고 폴라리스는?”

    “쥐고 버리지 못할 것이죠. 어찌 되었든 제 근원지니까요.”

    “…싫다 진짜.”

    “하지만 저희에겐 이 우주가 모든 행선지의 끝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

 

    다시금 쿵쿵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천둥소리 같던 땅울림이 공기를 진동할 정도로 커지더니 새카맣게 변한 하늘이 무너졌다. 모든 것은 제물이 되고 우주의 끝이 도래하게 됨을 직감했다. 딜라인은 발레오의 팔찌를 감싸 쥔다. 팔찌의 흰 빛조차 나오지 않아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여전히 서로의 얼굴은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 둘의 마지막 신념이기도 했다. 하나의 별이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다면 그게 너였으면 좋겠어.”

    “당신은 당신이니까요, 발레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선 네가 필요해. 그러니까…. 곁에 있어 줘.”

    “기꺼이요.”

 

    지하 깊은 곳부터 무너져 내린다. 두 사람이 평생에 알고 지낸 세상이었다.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상자에 남은 단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발레오 에이프릴, 딜라인 어거스트. 그 이름만이 상자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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