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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가는 폴라리스가 안으로 사라진 A3 구역의 문을 응시했다. 알타이르와 데네브는 편하게 앉아 잠시 찾아온 쉬는 시간을 만끽하는 중이었고, 그건 이번에 호위 감찰관 의무를 새로이 배정 받은 시그마라는 봉사자도 다르지 않았다. 우뚝 서 있는 자신과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봉사자들. 사람들 속에서 홀로 유리되는 느낌에도 익숙해지던 참이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요?”

   “베가 님은 또 그런 걸 궁금해 하신다니까.”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잖아요. 저희가 신경 쓸 만한 건 아닐 거예요~.”

 

   태평스러운 대답이 너 나 할 것 없이 돌아왔다. 시그마가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치며 베가를 불렀다.

 

   “베가 님도 서 계시지 말고 여기 앉으세요!”

   “아뇨. 전부 앉아 있으면 보기 안 좋습니다.”

   “아…….”

   “……시그마 씨는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

   “앗, 저요?”

 

   돌연 질문을 받은 시그마가 의아한 소리를 냈다. 베가는 그를 묵묵히 바라봤다.

 

   첫인상으로 느낀 바 시그마는 쾌활한 성격이기는 했으나 첫날부터 폴라리스가 내어 준 간식에 정신을 빼앗기지를 않나, 알타이르와는 금세 친해져 같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베가는 솔직히, 골치가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한 봉사자는 높은 공적을 인정받아야만 옐로그린 코드로 승격되기 때문에 시그마도 물론 대단한 공을 세웠을 터였다. 폴라리스의 호위직인 만큼 신규에게 호기심이 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베가를 비롯한 세 사람이 시그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전에는 비밀 감찰관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게 뭔가 어색하네요.”

   “비밀 감찰관이셨군요. 그러면 반란분자들을 멋지게 제압하셨겠네요……!”

 

   데네브가 동경 어린 목소리로 말했을 때 시그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의 공백이었지만 베가는 시그마가 멈칫했다는 것을 기민하게 깨달았다. 그가 머뭇거린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멋지게, 제압을……해냈죠. 그럼요!”

 

   시그마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어진 질문 세례로 그가 이전 운명의 탑 테러 사건에서 활약했다는 굉장한 사실도 드러났다. 알타이르와 데네브가 탄성을 낸 반면 베가는 의구심을 품었다. 플라네타리움은 반란분자 색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풍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랑스러울 업적일 텐데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시그마의 태도는 마음에 걸렸다.

 

   “저 말고 다른 분들 이야기도 들어야죠!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셨어요?”

   “…….”

 

   베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그마가 화제를 바꿨고, 그는 떠들기 시작한 사람들 너머로 시그마를 지켜봤다.

 

   감찰원이었다면 반란분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유혈 사태도 드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퍽 안된 일이었다. 베가는 시그마에 대한 평가를 거기서 마무리지었다. 선천적 오류를 가진 하자품은 이해 받을 수 없는 관계에 차차 미련을 버려 가던 중이었다.

 

   그런 시그마도 불량품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저 말고 오류를 가진 사람을 발견한 그때 베가는 플라네타리움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래 제일 큰 목소리를 냈다. 억눌러 왔던 기대, 플라네타리움에서 타인과 이어졌다는 생경한 감각. 시그마의 놀란 얼굴에서, 베가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비롯되는 놀랍도록 커다란 안정감을.

 

   그 감정은 더없는 친밀감을 불러왔다. 시그마의 짓궂은 장난에는 진저리를 쳤지만 그가 제한 구역 탐사에 기꺼이 동행해 주는 것이 기뻤다. 탐사 중 뜻밖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구역질을 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해 주는 그는, 어디까지나 함께해 줄 것 같았다. 괴짜 취급을 받아 외따로 도는 일은 익숙할 터였는데.

 

   그래서 간혹 보이는 시그마의 이상한 모습이 더 신경 쓰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시그마 씨?”

   “네? ……아,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 했어요.”

 

   정말 가끔이었지만, 시그마가 문득 활기를 잃고 침묵에 잠길 때가 있었다. 평소의 시그마는 말을 많이 하고, 장난 칠 타이밍만 엿보고, 베가가 질색할수록 재미있어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모르는 쪽이 더 어려웠다. 그러나 베가가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금세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캐묻기를 못하는 베가는 단서를 얻기 위해 시그마의 행동을 계속 주의 깊게 살폈으나 전혀 짐작 닿는 곳이 없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 되뇌어도 시그마의 침울한 뒷모습을 보면 손끝에 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베가가 충동적으로 그런 말을 해 버린 건 운명의 탑 180층에 오른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타난 180층을 시그마는 우두커니 바라봤다. 테러 사건 이후 전흔이 낭자한 그곳에서 넋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했다. 베가만 두고 멀리 가 버린 것 같이…….

 

   180층을 형식적으로 둘러보고 돌아온 베가는 손을 뻗었다. 시그마의 어깨를 잡았다.

 

   “시그마 씨.”

   “……아, 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도 될까요.”

   “베가 님이 저한테요?”

 

   의문과 궁금증이 일순 상념을 걷어간 듯 시그마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가는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그마가 끄덕이자 그간 참아 왔던 것처럼 말이 쏟아졌다.

 

   “시그마 씨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감사하고 있습니다.”

   “……!”

   “저는……시그마 씨를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오류가 있어서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었는데, 시그마 씨를 만나서 다행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의지해도 된다고.

 

   “……그것뿐입니다. 여기는 특별한 게 없으니 이만 가죠.”

 

   그 말을 할 용기까지는 없었다. 베가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안으로 돌아갔다. 그가 민망함에 열림 버튼을 누른 채 애매한 곳을 응시하고 있자 뒤늦게 따라온 시그마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베가 님 너무해요!”

   “……뭐가요.”

   “그렇게 말하고 가 버리는 게 어딨어요! 저 자기 할 말만 하고 도망가는 거 싫어하거든요! 제 말도 들어 주셔야죠!”

 

   그렇게 말한 시그마는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베가는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저도 베가 님이랑 다니는 거 너무 재밌고 든든했어요. 그러니까 감사할 필요 없어요! 누가 친구끼리 그런 걸로 감사하다고 해요?”

   “…….”

   “저도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서 엄청 기뻐요. 우리 앞으로도 계속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둘만 아는 비밀이 너무 많아졌으니까 한 쪽이 배신하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그 말을 듣고 베가는 인정하고 말았다. 실제 시그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상한 직감이 있었다. 시그마에게는 자신이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거라고. 자신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를 존중해야 한다고…….

 

   “……네. 그럼 다음에도…….”

   “네! 잘 부탁드려요!”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이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 테니까. 이 수상쩍은 도시에서 친구가 생겨 들뜬 마음에 벽 안쪽을 넘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것으로 됐다. 시그마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시그마는 자신과 함께 가 줄 것이다. 베가가 그의 그늘을 평생 알지 못해도.

 

*

 

   스러지는 플라네타리움의 최후처럼 타오르는 석양이었다. 베가는 눈이 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목도하는 세상의 끝. 거칠고 자유로운 바람과 짠 냄새가 오감을 압도한다. 눈이 부셔 눈가를 좁히면 시야 안으로 누군가 성큼 들어왔다.

 

   석양의 빛을 머금은 금발이 바람에 부산하게 휘날렸다. 베가의 손을 이끌어 잡은 시그마가 석양을 등지고 웃었다. 순간 시그마가 가면 속에서 저런 미소를 지은 적은 없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스쳤다. 시그마는 지금 누구보다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베가의 얼굴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않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가면을 벗었을 때부터 저를 계속…….”

   “그냥 좋아서요. ……있죠, 바깥에 나와서도 저랑 계속 친구로 지내 주실 거라고 하셨죠?”

   “그랬죠.”

   “헤헤. ……그럼 친구가 된 기념으로!”

 

   시그마가 베가를 숨 막히도록 끌어안았다. 온기가 온몸에 덮쳤다. 베가가 한 박자 늦게 놀란 소리를 냈다. 시그마는 오래도록 베가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 온기 때문인지, 수평선을 맞닥뜨린 해방감인지. 알 수 없는 고양감에 베가가 달싹이던 입을 뗐다.

 

   “……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뭔데요?”

   “괜찮으신 건가요? 그게, ……가끔 울적해 보이실 때가 있었어서.”

   “아, 그거요…….”

 

   시그마는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괴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괜찮아요. 당신이 있으니까.”

   “…….”

 

   꽤 듣기 좋은 말이었으나 베가는 짐짓 두고 본다는 투로 말했다.

 

   “언젠가 자세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여기서 말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그래요! 나중에 꼭 말해 줄게요. 정말이에요!”

   “약속한 거예요.”

 

   약속, 하며 시그마가 다시 베가를 안았다. 베가도 시그마를 마주 안았다.

 

   처음 만나는 바깥의 일몰, 하늘, 바다. 그리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 베가는 생애에서 가장 밀접한 연결을 느낀다. 복제된 세계의 구성원에서 너와 나로 분리되어 다시 하나가 되는 감각. 오류로 깨져 나온 파편이 사실은 희망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 사람을, 베가는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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